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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0
동숭동 마로니에, 기억하시나요? 서울대 종합화 50년, 옛 캠퍼스는 지금…

올해는 서울대학교의 단과대학들이 관악으로 통합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1975년 단과대학들이 관악으로 모이기 전, 서울대의 역사는 서울 도심 곳곳에 뿌리내려 있었다.
동숭동의 문리대, 법대, 종암동의 상대, 공릉동의 공대, 용두동의 사대 그리고 수원의 농대까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옛 캠퍼스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이번호에 동숭동, 종암동, 수원 캠퍼스를 둘러보고 12월호에 공릉동, 용두동을 탐방한다.
이번 기획은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여정이자, 다음 50년을 향한 도약의 출발점이다.
대학 본부→ 예술가의 집, 법대→사대부설초, 상대→사대부고
동숭동 문리대·종암동 상대 캠퍼스
대학 본부→ 예술가의 집, 법대→사대부설초, 상대→사대부고
동숭동 문리대·종암동 상대 캠퍼스


1. 옛 모습을 간직한 서울대 본부 모습. 지금은 예술가의 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2. 세느강이 흘렀던 곳에 조성된 실개천. 3. 문리대 학생과 교수들이 즐겨 찾던 대학로의 중국요리집 진아춘, 지금은 위치를 옮겼다. 4. 법대 이전 후 문을 연 법대문방구, 상점의 이름이 과거의 터를 기억하게 한다. 5. 1956년 개업한 대학로의 명소 학림다방,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세느강은 복개로 사라지고
중식집 진아춘 3대째 명맥
4.19 기념탑은 관악으로 이전
1907년 세운 시계탑 건재
1975년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대, 법대가 관악으로 이전한 뒤 동숭동 캠퍼스는 사라졌다. 캠퍼스의 울타리는 없어지고, 주변은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마로니에공원’을 걷다 보면 여전히 학교의 흔적이 느껴진다.
혜화역을 나와 공원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마로니에 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시 학생들에게 마로니에는 문리대의 상징이었다. 이상봉(식물65) 동문은 입학 50주년 문집 ‘동숭클럽 이야기’를 통해 “마로니에 나무, 그것은 문리대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고 문리대 교정에서 가장 내세우던 나무였다”고 회고했다. 마로니에 나무 아래에는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사진)가 자리한다. 옛 문리대 본관과 도서관, 강의동 등을 축소해 재현한 모형도 함께 남아있다.
정문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흘렀는데, 학생들은 그 물줄기를 ‘세느강’,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 불렀다. 지금은 복개돼 사라졌지만, 그 위로 걸어 들어오던 길이 오늘날의 혜화로다. 보도 곳곳의 네모난 철제 덮개들이 당시 개천의 흔적을 암시한다. 일부 구간은 2009년 ‘대학로 실개천 조성작업’을 통해 실개천으로 부활했다. 보도 옆 좁은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며, 옛 캠퍼스의 지형을 희미하게 되살리고 ‘세느강’의 기억을 일깨운다.
한때 도서관이 있던 자리는 아르코예술극장이 차지하고 있고, 대학본부로 쓰이던 붉은 벽돌 건물은 외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술가의 집’으로 변신했다. 계단과 아치, 중앙 홀의 구조가 본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상징물인 4·19 기념탑은 관악 이전 때 함께 옮겨져, 현재는 4·19 공원에 세워두었다. 당시의 정신은 관악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법대 터에도 몇 가지 흔적이 남아 있다. 현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 정문으로 쓰이는 기둥은 원래 법과대학의 교문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지키지만, 한때 수많은 법대생이 오가던 자리이기도 했다. 그 맞은편에는 ‘법대문방구’라는 작은 가게가 있다. 법대의 이전 이후에 생겼지만, 이름만으로도 이 일대가 서울대 법대의 터였음을 알려준다.
1956년 개교 10주년을 기념해 법과대학동창회가 기증한 ‘정의의 종’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정의의 종’은 교정의 상징이었다. 현재는 관악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에 자리하며, 그 문구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동숭동에서 도로 맞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하나의 서울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리대와 법대가 떠난 후에도 변함없이 대학로를 지켜온 서울대 연건캠퍼스다.
“한적하고 고요하던 모교의 주위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밤이면 어지러운 조명들로 현기증마저 일으키는 곳으로 변해버렸지만, 우리의 모교는 바로 그 자리에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의대 40회 동기들의 수필집 ‘그때 연건동 28번지’에 실린 윤형진(의학80) 동문의 말처럼, 서울대 의학의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여전히 그때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의대 정문과 그 너머 단정한 황갈색 벽돌 건물이다.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의학부 본관, 지금의 의대 행정관이다. 한 세기를 넘긴 건물 안에서는 지금도 행정과 연구의 시간이 이어진다. 옆에는 작은 수위실도 함께 남아있어, 80여 년 넘게 당시의 풍경을 거의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병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붉은 벽돌 시계탑 건물이 한 세기 넘는 세월을 품은 채 서 있다. 이곳은 1907년 완공된 옛 대한의원 본관, 지금은 서울대 의학박물관으로 그 역할을 이어간다. 이 건물은 서울 의학의 상징이다. 1970년대 말 병원 신관이 들어서며 본관 기능은 옮겨졌지만, 건물은 지금도 시간을 새기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과거의 의료기구와 교재가 전시돼 있다. 병원 인근에는 조선시대 함춘원의 일부였던 함춘문(含春門)이 남아 있다. 대한의원 시절에도 존재했던 문으로, 연건 캠퍼스의 역사를 증언한다.
그리고 최근, 이곳에 또 하나의 새로운 시간이 더해졌다. 의학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빛의 도서관’이라 불릴 만큼 자연광을 살린 설계와 따뜻한 목재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오래된 캠퍼스 속에서도 새 시대의 숨결이 느껴진다.
성북구 종암동에는 서울사대부설중·고등학교가 자리한다. 지금은 학생들의 함성으로 가득한 이곳이, 옛 서울대 상과대학의 교정이다.
당시 본관 앞에는 약 150평 규모의 소나무 숲이,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100평 남짓의 숲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이 숲을 ‘향상림(向上林)’이라 불렀다. 젊은 상과대 학생들의 패기와 진취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향상’이 붙었다. 지금도 그 일부가 교정에 남아 옛 캠퍼스의 자취를 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들이, 이곳이 한때 상과대학 학생들의 열정과 꿈이 자라던 자리였음을 말해준다.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한 뒤에도 일부 건물이 남았으나, 대부분 2010년대에 헐렸다. 그중 옛 상과대학 도서관 건물은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지금은 사대부고의 체육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학문과 사색의 공간이 이제는 젊은 학생들의 활력을 담는 장소로 변했다. 그러나 이 건물도 머지않아 사라질 예정이다.
사라진 교정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동문들은 2017년 이곳에 ‘서울상대 기념비’를 세웠다. 화강석 비석에는 상과대학 본관 사진과 함께 “서울대 상과대학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기념비는 사라진 캠퍼스의 기억을 이어주는 상징이 됐다.
“푸른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던 그 숲의 이름처럼, 우리의 젊음도 늘 위를 향해 있었다”는 당시 학생들의 말처럼, 지금도 교정에 남은 소나무들이 그 자리에 서서, 상과대학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윤 기자
이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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