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제6회 4.19 민주평화상 수상자 정중식 중환자의학과 전문의 수상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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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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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정중식입니다.

 

올해는 아직 벚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벚꽃이 피기 전에 카메룬 출장을 갔다가 그저께

귀국했기 때문입니다.

벚꽃 구경을 못한 저를 위해 아내가 집 앞 공원을

가득 메운 벚꽃 사진을 보내주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벚꽃도 아름답지만, 4월의 꽃은 누가 뭐래도 목련입니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이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3남매가 태어날 때마다 집 마당에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형은 단풍나무, 누나는 장미나무, 그리고

제가 태어났을 때는 목련을 심으셨던 것입니다.


그 목련이 4·19 민주혁명 당시 거리 곳곳에 피어 있었고,

떨어진 목련 꽃잎들이 거리의 쓰러진 학생들 곁에 나뒹굴어서

마치 하얀 피처럼 보였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제게 이런 큰 상을 주셔서 목련은 저에게

더욱 의미 있는 꽃이 되었습니다.

 

4.19 민주혁명의 숭고한 정신과 자유, 민주, 정의, 인권,

평화의 가치를 기리는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님을 비롯한 역대 수상자분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저에게 이 큰 상을 주신 것은,

가난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 모든 분들의

노력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4년 차였을 때

서울대학교병원이 위탁 운영하던 

서울시립 보라매병원의 응급실에는 홈리스,

즉 행려환자 전용 진료 구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행방이라고 불리던 20여 병상 규모의 그 구역에는

의료진이 인턴 한 명과 간호사 한 명 밖에 없었기에,

중증 행려환자들은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8년이 지나

제가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었을 때도

행방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행방 전담 교수라는 비공식 보직을 만들어,

홈리스 환자들의 가난과 죽음에 맞선 싸움에 함께 했었습니다.

 

처음부터 출발선이 달랐던 그들의 삶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생명의 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이

참된 정의이자 인권이라고 믿었습니다.

 

20101월에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으로 수없이 많은

가난한 생명들을 잃었던 사건은, 저로 하여금

국제보건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국제보건은 홈리스 진료와 마찬가지로

건강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주된 분야였습니다.

 

그 이후, 저는 국내 홈리스 형제자매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죄송함을 마음의 부채로 남긴 채 교수직을 사퇴했고,

가난생명이라는 제 인생의 키워드 위에

세계라는 단어를 하나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남아시아 한 나라 빈민가 근처에서 두 달 동안 살면서

거리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제가 건넨 도시락을 먹기보다

동네의 한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가, 유리창 너머로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매장 밖으로 포장 음식을 들고 나오는 

또래 아이들에게 다가가 감자튀김 한 조각만 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점의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안과 밖 세상의

극명한 명암 대조는, 그 후 카메룬에서 일하는 내내,

제가 일하는 병원은 절대로 그 패스트푸드점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곤 했었습니다.


좋은 병원이라 해도 가난한 생명은 들어올 수 없어서

밖에서 부러워만 해야 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자유와 인권,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룬에서 제게 맡겨진 임무는 국제보건과 응급의학이라는

두 영역, 즉 가난과 생명이라는 두 키워드가 교차하는

완벽한 교집합과도 같았습니다.

카메룬 최초의 국립응급센터 개원 준비와 운영, 그리고

여러 지원 프로젝트들의 개발과 실행을 맡아오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카메룬 응급의료는 지금과 같은 비전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상 분야부터 정책 분야까지, 또 병원 밖 이송체계부터

재난 대응까지 카메룬 응급의료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 핵심 체계를 세워 나가는 포괄적 사업은

한국국제협력단 KOICA의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야운데 응급센터에는 저 외에도 지금까지 44명의 KOICA

인력이 파견되었습니다. 함께 개원을 준비하고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함께 밤을 지새운

봉사단원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한편 제 꿈이기도 했던 응급의학 전문의 수련제도가

재작년에 시작되어,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반이 마련된 데에는

모교인 서울의대와 서울대학교병원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카메룬에서 일하는 동안 때로는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와 같은 리더십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백의종군의 마음으로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조준혁 대사님과 임재훈 대사님,

김태영, 연제호, 이규홍 전 KOICA 카메룬 소장님들의

각별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열대열 말라리아에 다섯 번이나 걸린 남편과

네 번이나 걸린 아들을 돌봐 주면서도,

가난한 생명을 지켜가는 길에 기꺼이 함께해 준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4월이 목련이듯이, 카메룬은 물망초입니다

한순간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가난은 민들레입니다.

밟혀도 다시 일어나 함께 살아갈 희망을 이어갑니다.

생명은 장미입니다

가시의 아픔을 견디고 꽃잎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4월도, 카메룬도, 가난도, 생명도 다 꽃입니다

제 삶도 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작은 들꽃이 되면 좋겠습니다.

 

국제 보건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이려 할 때, 멘토이셨던 분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Piece of Africa’, 아프리카의 조각. 아프리카의 조각이

심장에 박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5년 쯤 지나서야, 제 심장에도 박혀 있는

아프리카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도

혹시 아프리카의 조각을 품고 있는 분이 있다면,

언젠가 그 땅에서, 가난과 생명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그 조각을 꺼내 깊은 호흡으로 함께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카메룬은 저의 심장에 박힌 한 조각이 아니라

제 심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카메룬 국립 야운데 응급센터 주 치료구역의 한쪽 벽,

병상 위의 환자들이 누워 바라보는 정면 벽에

이런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With our warm hearts, your heart will keep beating.”

우리의 따뜻한 심장과 함께 당신의 심장은 계속 뛸 것입니다.

 

이 상을 제게 주시고 이 자리에 와 주신 여러분의 따뜻한 심장은

먼 나라 그들의 가난한 심장과 함께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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