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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등록일
2023-05-08
전영애 (독문 69-73) 수요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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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nua.or.kr/magazine?md=v&seqidx=10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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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파우스트’ 강의에 깊은 공감
여백서원 확장 ‘괴테 마을’ 조성 꿈
3월 22일 오전 7시 마포 본회 장학빌딩 2층. 수요특강 연사인 전영애 동문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안에서 꺼낸 것은 다양한 버전의 ‘파우스트’와 괴테 번역서들. 커다랗고 묵직한 영인본 원본과 손때 묻고 색인이 빼곡하게 붙은 옛 책까지 ‘동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손수 강연장에 펼쳐 놓았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괴테가 1832년 3월 22일에 죽었습니다. 저는 어제(3월 21일) 태어났습니다.” 괴테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다운 서두였다. 전 동문은 최근 경기도 여주에 지은 ‘여백서원’에서 괴테 전집 번역에 홀로 매진 중이다. 괴테의 시와 소설에 대해 무궁무진 할 말이 많은 그지만 이날은 ‘파우스트’에 집중해 ‘파우스트의 21시간 완본판 공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기가 막힌 책입니다. 저는 40년을 읽고 번역했고요. ‘파우스트’를 모르시는 분이 없지만 다 읽으셨어도 이상하죠. 연극 대본이거든요. 자연과학, 철학, 논리학이 많은 경험에서 하나의 공리를 추출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거꾸로입니다. 1만2,111행으로 풀어낸 것, 이 한 문장입니다.”
장장 60년간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압축하는 문장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통상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번역으로 익숙한 문장이다. 전 동문은 독일어 ‘streben’이 알고 하는 ‘노력’보다 몰라도 생겨나는 ‘마음속의 솟구침’을 뜻함에 주목해 번역했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면 비문이죠. ‘지향이 있다’는 건 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 갈 곳이 있으면 똑바로 가면 되는데 왜 방황을 할까요? 이 문장이 주는 위로가 굉장히 큽니다. 방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편안하고 값싸게 ‘괜찮아, 잘 갈 거야’ 위로 받으면 아마 잊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건, 의식하든 안 하든 내 마음 속에 갈 곳이 있고, 솟구침이 있기 때문이란 거죠. 문학은, 글쎄요. 복숭아 같아요. (전체를 요약하는) 이 문장은 복숭아 씨인데, 시고, 달고 한 과육들도 문학의 육질이죠.”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하늘에선 가장 아름다운 별을, 땅에서는 모든 최고의 쾌락을 맛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 온갖 학문을 섭렵하고 회의에 빠진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하고 영혼을 팔아 벌어지는 일들이 줄거리다. 이어 그는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문장을 띄웠다. “악인과 선인을 너무 쉽게 구분하는 우리와 달리 인간의 선근(善根)을 본 것, 포용력이 어마어마하다”고 소개했다.
“‘파우스트’의 소재 자체는 대단히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흥부 놀부전같이 오래 전승된 얘기, 기독교권의 권선징악 얘기죠. 파우스트라는 욕심 많은 인간이 살았고, 영혼을 팔아 24년간 복락을 누리고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인데, 괴테는 스위치를 하나 딱 틀어서 우리 시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 스위치가 뭐냐면, 24년간 내기를 하게 만들어요. 파우스트가 만족해서 ‘스톱’ 할 때까지 메피스토펠레스가 잘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파우스트’가 1만2,111행이 됐죠. 항상 가져도 모자라고 부족한 현대인을 200년 전에 앞서서 본 거예요.”
2부만 5막짜리인 ‘파우스트’의 완본판이 독일에서 공연된 적 있다. 전 동문은 그 공연을 이정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2부 2막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호문클루스는 현대의 AI와 개념이 같다고 소개했다. “괴테가 200년 전에 생각했던 인조인간은 정신의 정수입니다. 육신이 없어요. 200년 전엔 이해받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텐데 우리 시대에 훨씬 더 시사성을 갖게 됐죠.”
전 동문은 “‘파우스트’는 연극 대본인 만큼 역할을 나눠 같이 읽으면 정말 재밌다”고 했다. “우리 시대 서원을 만들어보고 싶어 지었다”는 여백서원에서 정기적으로 ‘파우스트’ 독회가 열린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1만㎡ 뜰에 모교 도서관 앞 하수구에서 발견한 느티나무 싹을 비롯해 버려진 나무들을 옮겨 심었고, “젊은 날 괴테의 집과 정원 등을 꾸며 ‘괴테 마을’을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까지. 한 사람이 실현해 가는 웅숭깊은 꿈에 객석에선 연신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질의응답 시간엔 선친 전우순(정치47-52) 동문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60대 후반부터 91세까지 혼자 사시면서, 90세 가을까지 매년 에베레스트에 가셨습니다. 드러누우면 자녀들에게 짐 된다며 45kg 몸에 20kg 배낭 지고, 5000원짜리 조끼 입고 날아다니셨죠. 한학자도, 서예가도 아닌데 말년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도산서원, 소수서원 원장을 하셨던 증조부의 문집을 국역하셨어요. 남의 나라 글은 줄줄 읽는 제가 한문을 몰라 못 읽는 게 안타깝다면서요. 서원에서 육필을 보실 수 있어요. 아버지 호가 바로 ‘여백(如白)’이십니다.”
강연 후에도 참석자들은 전 동문이 가져온 책들을 들추어 보느라 한참을 머물렀다. 한 동문은 “다가오는 주말 여백서원에 가기로 했는데 마침 강연이 열려서 왔다. 어디서도 이런 강의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쏟아지는 방문 문의에 전 동문은 “해외 일정으로 서원을 자주 비우니 미리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본회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전 동문이 번역한 괴테의 ‘서·동시집’을 증정했다.
여백서원 확장 ‘괴테 마을’ 조성 꿈
3월 22일 오전 7시 마포 본회 장학빌딩 2층. 수요특강 연사인 전영애 동문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안에서 꺼낸 것은 다양한 버전의 ‘파우스트’와 괴테 번역서들. 커다랗고 묵직한 영인본 원본과 손때 묻고 색인이 빼곡하게 붙은 옛 책까지 ‘동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손수 강연장에 펼쳐 놓았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괴테가 1832년 3월 22일에 죽었습니다. 저는 어제(3월 21일) 태어났습니다.” 괴테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다운 서두였다. 전 동문은 최근 경기도 여주에 지은 ‘여백서원’에서 괴테 전집 번역에 홀로 매진 중이다. 괴테의 시와 소설에 대해 무궁무진 할 말이 많은 그지만 이날은 ‘파우스트’에 집중해 ‘파우스트의 21시간 완본판 공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기가 막힌 책입니다. 저는 40년을 읽고 번역했고요. ‘파우스트’를 모르시는 분이 없지만 다 읽으셨어도 이상하죠. 연극 대본이거든요. 자연과학, 철학, 논리학이 많은 경험에서 하나의 공리를 추출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거꾸로입니다. 1만2,111행으로 풀어낸 것, 이 한 문장입니다.”
장장 60년간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압축하는 문장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통상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번역으로 익숙한 문장이다. 전 동문은 독일어 ‘streben’이 알고 하는 ‘노력’보다 몰라도 생겨나는 ‘마음속의 솟구침’을 뜻함에 주목해 번역했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면 비문이죠. ‘지향이 있다’는 건 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 갈 곳이 있으면 똑바로 가면 되는데 왜 방황을 할까요? 이 문장이 주는 위로가 굉장히 큽니다. 방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편안하고 값싸게 ‘괜찮아, 잘 갈 거야’ 위로 받으면 아마 잊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건, 의식하든 안 하든 내 마음 속에 갈 곳이 있고, 솟구침이 있기 때문이란 거죠. 문학은, 글쎄요. 복숭아 같아요. (전체를 요약하는) 이 문장은 복숭아 씨인데, 시고, 달고 한 과육들도 문학의 육질이죠.”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하늘에선 가장 아름다운 별을, 땅에서는 모든 최고의 쾌락을 맛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 온갖 학문을 섭렵하고 회의에 빠진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하고 영혼을 팔아 벌어지는 일들이 줄거리다. 이어 그는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문장을 띄웠다. “악인과 선인을 너무 쉽게 구분하는 우리와 달리 인간의 선근(善根)을 본 것, 포용력이 어마어마하다”고 소개했다.
“‘파우스트’의 소재 자체는 대단히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흥부 놀부전같이 오래 전승된 얘기, 기독교권의 권선징악 얘기죠. 파우스트라는 욕심 많은 인간이 살았고, 영혼을 팔아 24년간 복락을 누리고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인데, 괴테는 스위치를 하나 딱 틀어서 우리 시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 스위치가 뭐냐면, 24년간 내기를 하게 만들어요. 파우스트가 만족해서 ‘스톱’ 할 때까지 메피스토펠레스가 잘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파우스트’가 1만2,111행이 됐죠. 항상 가져도 모자라고 부족한 현대인을 200년 전에 앞서서 본 거예요.”
2부만 5막짜리인 ‘파우스트’의 완본판이 독일에서 공연된 적 있다. 전 동문은 그 공연을 이정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2부 2막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호문클루스는 현대의 AI와 개념이 같다고 소개했다. “괴테가 200년 전에 생각했던 인조인간은 정신의 정수입니다. 육신이 없어요. 200년 전엔 이해받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텐데 우리 시대에 훨씬 더 시사성을 갖게 됐죠.”
전 동문은 “‘파우스트’는 연극 대본인 만큼 역할을 나눠 같이 읽으면 정말 재밌다”고 했다. “우리 시대 서원을 만들어보고 싶어 지었다”는 여백서원에서 정기적으로 ‘파우스트’ 독회가 열린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1만㎡ 뜰에 모교 도서관 앞 하수구에서 발견한 느티나무 싹을 비롯해 버려진 나무들을 옮겨 심었고, “젊은 날 괴테의 집과 정원 등을 꾸며 ‘괴테 마을’을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까지. 한 사람이 실현해 가는 웅숭깊은 꿈에 객석에선 연신 감탄사만 흘러나왔다.
질의응답 시간엔 선친 전우순(정치47-52) 동문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60대 후반부터 91세까지 혼자 사시면서, 90세 가을까지 매년 에베레스트에 가셨습니다. 드러누우면 자녀들에게 짐 된다며 45kg 몸에 20kg 배낭 지고, 5000원짜리 조끼 입고 날아다니셨죠. 한학자도, 서예가도 아닌데 말년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도산서원, 소수서원 원장을 하셨던 증조부의 문집을 국역하셨어요. 남의 나라 글은 줄줄 읽는 제가 한문을 몰라 못 읽는 게 안타깝다면서요. 서원에서 육필을 보실 수 있어요. 아버지 호가 바로 ‘여백(如白)’이십니다.”
강연 후에도 참석자들은 전 동문이 가져온 책들을 들추어 보느라 한참을 머물렀다. 한 동문은 “다가오는 주말 여백서원에 가기로 했는데 마침 강연이 열려서 왔다. 어디서도 이런 강의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쏟아지는 방문 문의에 전 동문은 “해외 일정으로 서원을 자주 비우니 미리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본회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전 동문이 번역한 괴테의 ‘서·동시집’을 증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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