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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숙자 (국문 64-68) 시인 기고문 <서울 1964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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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22
서울 1964년 봄



김숙자
국문64-68
시인
 
밤새 듣고싶던 이어령 교수 강의
교문 앞 ‘세느강’ 다리 위 추억

 
그해 봄은 유난히도 추웠다. 연초에 입학시험 때부터 그랬다. 너무나 추워서 시험장 바깥마당에 장작불이 피워졌었다. 국어와 수학이 기막히게 어려워 그냥 시험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불을 쬐며 기다리고 계신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때 참기를 참 잘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가슴마다 진리탐구의 열망을 품고 모여든 인재 친구들을 어디서 만났으랴!
 
그러나 우리의 대학 생활은 불행했다. 입학식을 끝내자마자 그 유명한 ‘3·24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터지며 매일매일 휴강이 계속되더니, 급기야 6월 3일에 강제로 교문이 닫혀 버렸다. 그날로 방학이 시작돼 장장 3개월간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문리과대학 신문인 ‘새세대’의 기자마저 되지 않았다면 정말 대학 생활이 무의미할 뻔했었다. ‘새세대’는 당시의 통제 체제 아래서도 저항적 성향을 견지했었고 그래서 툭하면 신문 발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곤 했었다. 어느 날 아침 휴강 때 편집실로 가니 한쪽 벽 가득히 시꺼먼 벽화가 그려 있었는데 4학년인 김지하의 작품이라고 했다. 누군가 급히 뛰어와 하얀 페인트로 그림을 덧씌워 지워버렸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필적할 만했던 그 그림은 지금도 눈에 선하게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그런 속에서도 5월 말에는 합창단의 음악회가 열렸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들을 60년이 다 되도록 가끔씩 흥얼거리다 보면 그 시절이 꼭 암담하기만 했던 세월은 아니었지 하며 작은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그렇다고 항상 맹탕으로 공부라고는 안 하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강의, 잊을 수 없는 교수님들이 많이 있다.
 
강신항 교수님의 문장 강화 시간이 특히 생각난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고 남학생은 제롬이 되어 알리사에게, 여학생은 알리사로서 제롬에게 편지를 써 내라는 과제를 주셨었다. 교수님은 내 글 밑에 붉은 펜글씨로 “이렇게 잘 쓴 글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코멘트를 달아 주셨다. 그 원고를 들고 ‘새세대’로 달려갔다. 마침 문예면 특집으로 기자들의 글이 실리게 되어 나의 글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누구나 다 그런 정도의 칭찬을 받았을 텐데 나만 그런 줄 알고 우쭐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이어령 교수님의 강의는 밤이 새도록 듣고 싶었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춘원이나 이상의 이야기를 어쩌면 그리도 재미있게 하시던지! 돌연한 방학으로 중단된 그 강의가 지금도 그립다.
 
학교 교문 앞 ‘세느 강’ 다리 위에는 책 몇십 권을 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를 사 들고 교정의 벤치에 가서 막 읽기 시작하는데 사진 한 장이 책갈피에서 떨어졌다. 매우 멋진 청년이었는데 얼핏 보기에 그 책 장사 아저씨의 사진일 것 같았다. 교문 밖으로 달려나가 사진을 내밀었을 때 그 아저씨의 부끄러워하던 모습! 지금도 책을 읽다가 잠시 덮을 때면 왠지 불쑥불쑥 그 아저씨의 빨개졌던 얼굴이 떠오른다.
 
60년 전! 붓을 들어 그릴 수 없어도 머릿속 앨범에 파노라마 사진들처럼 선명하게 붙어 있는 1964년의 봄! 화사했던 교정의 개나리, 라일락과 함께!

 
*김 동문은 모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시인으로 활동하며 시집 ‘물그림자’, 역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시드니 셸던)’ 등을 냈다. 이화여고 교사, 국제언어연구소 영어연구원, 한국여학사협회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신사문화센터 영소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총동창회보 7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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