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대법관 수상 연설 전문 "엘리트들의 이익 카르텔 끊어내는 노력 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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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3419민주평화상 수상자 김영란 전 대법관 수상연설

엘리트들의 이익 카르텔 끊어내는 노력 더 필요해

‘419민주혁명’ 62돌 맞아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 개최, 상금 5천만원

 

419민주혁명 62돌을 맞은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제3419민주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현 아주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은 수상 연설을 통해 우리 사회는 소수의 독재자나 권력자들이 다스리는 단계에서는 벗어났지만, 엘리트들이 카르텔을 만들어서 권력과 부를 나누어 가지는 사회로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져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수상자는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는 혈연, 지연, 학연에 기대어 이익을 도모하는 카르텔을 만드는 문화를 그대로 둘 수 없으며 그런 사회를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런 분들의 열망이 강렬한 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며 우리 사회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말한다고 말했다.

김 수상자는 이어 자신이 공직이후 변호사 개업이나 대기업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대학으로 적을 옮긴 이유와 관련, “판사로 재직할 동안에는 현실적인 사건사고에 대해서 법을 정의롭게 적용하는 문제를 고민해왔지만, 이후로는 법이 우리 사회에서 정당하게 적용되고 집행되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학구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종섭 서울대총동창회장은 김영란 수상자에게 상장과 조각상패와 상금 5,000만원을 시상했다. 이 자리에는 오세정 서울대총장, 1, 2회 수상자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수석, 김인규 서울대문리대동창회장 등 60여명의 초청자들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유홍림 심사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은 김 전 대법관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3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입안하였으며, 이 입법을 계기로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정의를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한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419민주평화상2020419민주혁명 60주년을 맞아 서울대문리과대학동창회가 ‘419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시지프스로서의 삶

 

서울대 문리과대학 동창회가 제정한 4·19 민주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상을 갑자기 받게 되면서 4·19 혁명을 떠올려 보았습니다저는 1956년 생으로 4·19 혁명의 그 해에 다섯 살에 불과하였습니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하였고 나중에서야 역사속의 한 사건으로 배웠던 세대입니다아직도 그 현장을 뛰어다니셨던 분들께서 활동하시고 계신다는 점에 깊은 경의를 표할 따름입니다.

문리과대학에 대해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제가 입학했던 1975년은 동숭동의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이전했던 첫 해였고 문리과대학은 사회대인문대자연대 등으로 재편되어서 사라져버린 후였습니다사회계열의 한 입학생으로서 진눈깨비가 내려 흠뻑 젖은 잔디밭에 서서 으슬으슬 떨면서 참석했던 입학식의 정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사실 저는 인문계열로 진학하여 국문과나 독문과에서 공부하고픈 생각이 있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사회계열을 지망하여 법학과로 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졸업하자마자 사법연수원을 거쳐 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바라던 문리과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문리과대학 동창회에서 주시는 이 상을 수상하게 되어 색다른 감회가 있습니다.

심사를 하셨던 분들께서 제게 이른바 ‘김영란법’을 제안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또 공직 이후에 선택한 삶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다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공직에 있을 때나 이후의 삶에서나 항상 제게 주어진 숙제를 최선을 다하여 풀어본다는 자세로 임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판사로서 30년 가까이 재판을 하면서 무엇이 정의이고 올바른 길인지를 찾아보려고 늘 노력했습니다판사로서 살아온 한정적인 경험들이 판결의 결과를 좌우하도록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고 기본적 인권이 더 폭넓게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부정과 부패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제도를 근본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판사로서 일하면서 저는 일상에 만연한 부패를 목격할 수 있었으나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는 부패범죄는 한정적이었습니다무슨 일만 생기면 아는 사람은 없나 찾고 전화 한 통 걸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을 뇌물죄로 일일이 처벌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저는 이런 저런 인연과 연고를 자산으로 삼아 사익을 추구하는 문화 자체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미래지향적인 반부패 제도를 만들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는 소수의 독재자나 권력자들이 다스리는 단계에서는 벗어났지만 엘리트들이 카르텔을 만들어서 권력과 부를 나누어 가지고 있는 사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그 카르텔은 혈연지연학연에 기대어 이익을 도모하는 우리의 문화 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그 카르텔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제가 희망적이라 느꼈던 것은 이런 카르텔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는 문화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몹시도 강렬했다는 점이었습니다그런 이익의 카르텔에 편입되어야만 혜택을 누리는 사회나 그 카르텔에 편입되기 위해 소모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사회를 그대로 둘 수는 없으며그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는 분들이 절대 다수를 이룰 정도로 우리 사회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그 열망과 동의에 터잡아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졌고 점점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공직을 마친 다음 변호사를 할 수도 있었고 이런저런 사회단체나 대기업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대학으로 적을 옮겼습니다판사로 재직할 동안에는 현실적인 사건사고에 대해서 법을 정의롭게 적용하는 문제를 고민해 왔지만 이후로는 법이 우리 사회에서 정당하게 적용되고 집행되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학구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런 취지에서 대법원판결에 대한 비평서법에 관한 교과서적인 책을 써보기도 했고책읽기에 관한 저의 생각을 담은 소소한 책들도 써보았습니다젊은 시절부터 판결문만 써온 탓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없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책을 한 두 권 더 써보고 나면 제 스스로에게 부여한 숙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그러나 4·19 민주평화상을 수상하면서 4·19 정신의 한 편린이라도 담아내는 삶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그러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새로운 숙제가 주어진 것만 같습니다과장하자면영원히 숙제를 풀어야 하는 시지프스의 삶이 제게 주어진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열심히 이 상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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