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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원 (수학 75-79) 40년간 깨지지 않은 사격 기록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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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2

두려움과 욕심 사이 한 발사격의 관건은 통제력

김영원(수학75-79)
모교 수리과학부 명예교수

관리자 주: 문리과대학 동창회 공식 입장은 74년도 입학생까지 동문으로 간주하지만 그 아래 가까운 학번 후배들도 간간이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문리과대학명칭은 사라졌지만 문리대의 분위기는그대로 이어질수도 있을테니까요.  

  




고교때 입문학생선수 활동도
모교 사격회 최고기록 보유

사대에 선 김영원 수리과학부 명예교수는 말이 없었다끌러놓은 손목시계를 응시하며 경기용 공기권총을 쥐고 있길 한참어깨부터 손목까지 일직선이 되더니 천천히 총구가 올라갔다. 45도 각도로직각으로팽팽하게 팔근육이 올라오고 눈빛은 한층 매서워졌다부동자세로 뻗은 손 끝에서 찰나에 울린 빈 방아쇠 소리서서히 팔을 내리더니 50초 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요즘 김 동문이 하는 빈 총 훈련이다.

지난 3월 모교 사격동아리 인터뷰사격장 개인 기록판 맨 위에 적힌 이름이 눈에 띄었다. ‘김영원, 600점 중 571’. 학생인가 했는데 사격회 선배님이자 지도교수님이셨던 분이라고 했다. 1984년 모교 박사과정이던 김 동문이 서울시장기 사격대회에서 세운 사격회 개인 최고 기록으로 4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6월 28일 관악캠퍼스 68동 사격장에서 사격하는 수학자의 얘길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회에 나갔어요당시 나라에서 사격을 권장해 고1이던 1972년 학교 운동장에 사격장이 생겼죠교련 시간에 전교생에게 총을 쏘게 하더니 몇 명을 지목해 사격대회에 내보내더군요개인 총도 없이 주최측이 주는 엉터리 총을 썼고점수도 형편 없었지만 계속 총이 쏘고 싶었어요.” 그 무렵 서울대 사격회를 알게 됐고 모교에 합격하자마자 사격회로 달려왔다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준 선수용 공기 권총과 함께였다. 2학년 때 학생 사격대회 남자 대학부에 출전해 대회 신기록과 2위를 기록하며 두각을 보였다. “한국전 참전용사셨던 아버지께서 젊을 때 남들보다 잘했던 두 가지가 사격과 수학이었다는데 신기하죠대학 4년 동안 수학 공부보다 총 쏘기에 더 열중했습니다대회 기록도 여럿 세우고군복무도 해군 사격지도대에서 했지요.”

살면서 나같은 몸치를 본 적이 없다다는 김 동문이 사격을 잘한 비결이 뭘까그는 지구력을 으뜸으로 꼽았다. “사격 경기를 보면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저게 무슨 운동인가 싶죠선수 처지에선 한 발 한 발 쏘는 게 진짜 힘듭니다. 1시간 15분 동안 꼼짝없이 서서 수십 미터 멀리 벼룩보다 작은 표적을 맞춰야 해요그것도 60발 모두를 똑같이 집중해서요선수들도 50발 쏘면 더이상 집중하기도 싫고 지쳐서 아무렇게나 쏴버리고 싶어지죠근데 전 그 무시무시한 집중이 힘들면서도 재밌더군요.”

사격이 어려운 건 필연적인 오차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0.17초 전 일을 인지하는 사람의 눈과 총기 구조상 물리적 지연시간 때문에 지금이다’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겨도 표적을 빗나가기 일쑤그래서 명사수들은 본래 별개의 과정인 조준선 정렬과 격발이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도록 훈련한다김 동문은 사격 경기는 주식매매와 같다고 말한다.

사격에서 쏘는 한 발은 일종의 의사결정입니다주식 거래도 시시각각 변동하는 장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이죠주식을 사고 팔 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남기고픈 욕심과 잘못하면 망한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낍니다사격 또한 흑점 안에 쏘고 싶어 시간 끌다 힘이 빠지기도 하고한 순간 실수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게 두려워 방아쇠 당기길 주저해요중요한 건 총이 흔들리든 말든 내 템포에 맞춰 꾸준히 당기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욕심과 두려움 사이 통제력을 기르는 게 사격술의 본질 같아요.”



사격 자세를 취한 젊은 시절 김영원 동문의 모습.


평생 해온 수학과 사격은 그에게 어떤 관계일까김 동문은 복소 해석학’ 연구의 권위자로 많은 수학자가 도전한 푸리에-폴리아 예상을 공동으로 해결했다. “수학자 중에 사격하는 사람은 저 빼고 본 적이 없다근데 수학과 사격 역시 무척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수학 난제를 접하면 도저히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안 올 때가 많아요대책 없이 흔들리는 총을 쏘려면 답답하기 그지없죠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서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해요. 1981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가 2등 차이로 탈락했습니다실패했지만 많은 연습을 했기에 사격도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이후론 수학도 사격처럼 연습하면 잘 되리란 생각으로 공부에 몰두했어요.”

2022년 정년퇴임한 김 동문은 모교 사격회 기술자문과 총기 관리자를 맡고 있다아내도 사격회에서 만났다. “아내는 공기소총 솜씨가 뛰어났어요간호학과여서 1년만 활동하고 연건캠퍼스로 간 게 아쉽죠제가 여러 팀에서 사격 선수 제의를 받았을 때 말린 대신 결혼 선물로 총 하나 사주겠다고 했거든요. 10년 전 그 약속을 지켰죠.”

아내가 선물한 총을 비롯해고인이 된 국가대표 사격 선수의 유품을 물려받은 것까지 공기권총 세 자루를 보유했다모교 사격장 무기고에 보관하며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안경을 쓰는 김 동문은 눈부터 권총 가늠쇠까지 90cm 거리를 보는 데 최적화된 사격용 안경을 맞춰 쓴다. “사격은 키몸무게사지 길이 등 신체 조건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남녀 차이도 없어요다만 국내에서 취미로 삼기 힘들긴 합니다몇 년 전 엽총 사건이 났을 땐 경기용 공기총도 경찰서에 보관해야 했죠. ‘손잡이만 갖고 있겠다고 양해를 구해 민간 사격장에 있는 총에 끼워서 연습했어요사격 즐기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분위기가 속상하지만지킬 건 지켜야죠.”

600점 중 500점을 거뜬히 넘기는 지금도 그는 총알이 없는 빈 총을 들고 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을 수없이 한다권총이 손에 꼭 맞도록 끌로 나무 손잡이를 조각하는 데도 정성을 쏟는다별도 훈련이라면 많이 걷고팔굽혀펴기를 하는 정도이쯤되면 점수에 대한 욕심과 표적을 명중하는 쾌감을 초탈해 사격이 그에게 수련의 일종이 된 듯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오로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손잡이를 깎는 것만으로 재밌지요이만큼 매력적인 장난감이 또 없습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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