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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국 (중문 71-75) 전유엔대사 총동신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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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3
[526호 2022년 1월] 기고  에세이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30년과 다가올 도전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전 주유엔대사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30년과 다가올 도전



박인국 
중문71-75
최종현학술원 원장·전 주유엔대사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을 막 넘은 시점에서,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 지난 73년간 유엔과 함께 격랑을 겪어온 우리의 지난 역사를 한반도 지정학 리스크 차원에서 재조명하며 다가올 30년의 도전을 가늠해 본다. 

유엔 안보리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4일 만인 6월 29일 북한의 무력공격을 평화에 대한 파괴로 규정하고, 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촉구하고 각국 군사력과 기타 지원을 미국 지휘하 통합사령부에 제공할 것을 권고하면서 통합사령부의 유엔기 사용을 승인했다.

1950년 당시 국제이동수단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16개국이 신속하게 파병을 전개한 것은 미국의 적극적 개입의지와 추진력이 주효했다고 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발생한 한반도의 대규모 전쟁을 유엔의 집단안보로 막지 못한다면 유엔의 장래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홍구 전 총리는 김일성은 물론이고 스탈린과 모택동도 이렇게 미국의 개입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으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집단적 오판’을 했다고 지적했는데, 새로운 대규모 전쟁 위기에 유엔이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음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국제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입각한 가치동맹의 연대의식이 점증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위기 시 한미동맹의 외연을 확장, 강화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냉전 해체 과정에서도 유엔은 한반도의 지정학 리스크 완화에 큰 역할을 했다. 남한의 유엔 가입을 거세게 반대해오던 북한이 입장을 바꿔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함으로써 유엔내에서 옵서버국에 불과했던 남북한 간의 치열한 소모적 외교경쟁은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북한이 남한 정부의 정당성을 계속 부인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엔 동시가입은 남북한 간 새로운 공존양식(Modus Vivendi) 조성을 위한 큰 돌파구였다. 중국도 1991년 5월 이례적인 리펑 총리의 방북을 통해 북한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중 협력관계가 한반도 평화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사한다고 하겠다. 유엔의 남북한 동시가입 승인은 1991년 12월13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12월 31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이라는 현대국제정치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분쟁해결사례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2013년 남한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에 가담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구실로 어렵사리 일구어 낸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2013년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으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최초 핵무기 실험 후 6~8년이 지나면 핵폭발장치의 소형화 후 미사일과 같은 운반수단에 장착하는 소위 ‘핵무기화(Miniaturization)’가 가능해지는데, 북한도 이 시점에서 핵무장에 대한 자신감이 확고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보검’이라고 천명한 이상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북한의 필사적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월가의 금융 전문가가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미국회사라면 주가가 얼마쯤 돼야 적정 가격일 것 같은지 물어온 적이 있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율이 반이 넘더라도, 이들이 한국에 있는 한 안보 리스크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어쩔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제 핵무장이 고도화된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유엔과 같은 국제적 권위를 가진 국제기구가 휴전감시나 긴장완충역할을 해줄수록 지정학적 안보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제재를 가하고자 10여 개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나 이들은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6년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2017년 5, 6차 핵실험 및 ICBM 발사 성공을 계기로 안보리는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강화된 제재 결의를 채택하게 된다. 중국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이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됨으로써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훨씬 더 강력한 압박 조치로 작용하고 있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민생과 관련되는 2016년 이후의 안보리 제재 완화를 끈질기게 요구했던 것은, 그만큼 상기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가 북한에 실질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최근 미중 갈등의 격화가 대북한제재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으나,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미중 양자 간 영역을 넘어 안보리를 통한 다자간 국제감시체제가 확립돼 있고, 중국이 북핵문제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경우 자칫 일본과 한국, 나아가 대만에 대해서도 핵무장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중국이 제재의 기본 틀을 깨기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80년대 대만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미국 정부가 탐지하고 이를 강력하게 저지했던 점에 비추어, 동북아 핵 비확산을 위해 중국은 미국의 협조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한 사태 악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싱가폴 미북 정상회담 참석 이후 대북 제재가 많이 해이해졌다는 우려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에 참석한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은 미중관계가 좋을 때에도 중국은 제재 문제에서 미국을 속여왔기 때문에 관계 악화 국면에서는 이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후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은 미국 우위의 탈냉전 세계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비상했다. 그러나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는 미중 간 헤게모니 쟁탈전과 북한의 고도화된 핵무기 보유로, 앞으로 30년 간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찬 비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우리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유엔은 다양한 형태의 위기조정 기능으로 우리를 도와왔다. 이제 한국은 지난 70년간 유엔과 함께한 극복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과 위기를 만날 때마다 유엔이 가지고 있는 전가의 보도, 즉 위기를 세상에 선포하고 집중시키는 ‘어젠다 설정 권한(Agenda-Setting Power)’과 ‘정상회의 소집능력(Convening Power)’, 그리고 국가 주권에 대한 적절한 강제력 행사권한을 활용함으로써 또 다른 ‘극복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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