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수상자 연설 전문 "과연 저들의 경륜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안보를 지켜낼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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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0

 

제2회 4‧19민주평화상 수상자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수상 소감 연설 전문

                

                   타는 목마름으로

 

저는 먼저 문리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리과대학 동창회가 4.19혁명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었고, 그것을 주도하고 민주 · 정의의 4.19혁명정신을 구현해 나온 것이 우리 서울문리대였음을 확인하면서, 늦게나마 4.19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핵심사업으로 설정, 추진하고 있는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와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1961년 4월 19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4.19 제1선언문)임을 선언한 이래 4.19정신의 구현을 위해 우리 문리대는 언제나 그 기폭제로서 투쟁해 왔으며 “4월은 죽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의 피로써 쟁취한 이 횃불이 온 광야를 밝히는 그날, 우리는 다시 수십만, 수백만의 함성으로 돌아오리라”(4.19 제8선언문) 약속하고 부단히 투쟁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4월은 언제나 잔인한 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중심에는 항상 우리 문리대가 있었습니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 저는 고등학교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거리에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 지고, 가슴에서는 무언가 벅찬 것이 치밀어 올라오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아마도 사단칠정(四端七情), 정의의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4.19 이듬해 저는 4.19의 감격을 안고 서울문리대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지 한 달 여 만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4.19정신은 군사독재 30여년에 걸쳐 폐칩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4.19정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생명력으로 부활했고, 민주 · 정의의 4.19정신은 자주 · 독립의 3.1정신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주정치를 규율하는 영원한 원리로, 또 헌법정신의 근간으로 되었습니다.

 

4.19혁명과는 숙명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저로서는 이번 4.19민주평화상의 수상이 더 없는 영광입니다. 제가 문리대를 다녔다는 것이 더 없이 자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손자, 손녀 앞에서 할애비의 80 평생이 결코 남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주시는 상금은 항상 쫓기는 사람의 아내로 살면서, 불안과 가난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준 아내에게, 인생에 단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돈으로 쥐어주는 큰 생색을 내고자 합니다.

 

1964년 4월 19일, 문리대생으로서 제가 쓴 4.19 제4선언문에서 “4월의 하늘은 이토록 청명한데 우리를 둘러싼 대기는 어이 이처럼 암울한가”라고 말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민주화 30여년을 경과하고 있는 오늘의 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거짓과 위선, 분열과 독선, 부패와 무능이 4월의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우리가 그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헤쳐왔던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정부 아래서 우리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선우후락(先憂後樂)은 못할지언정, 체질화화된 내로남불, 특권과 독선, 부패와 타락부터 먼저 배웠더란 말인가. 저 사람들이 과연 민주화의 과정에서 조국의 현실을 끌어안고 울어본 적이 있을까. 저 사람들이 과연 우리는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놓고 밤새워 고민하는 사람들인가. 과연 저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저출산, 양극화 등 지구적,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저들의 경륜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자유 · 민주 · 정의의 대로를 바로 걷는다면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 앞에서도, 북한을 향해서도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비루하고 구차한가. 분열에서 통합으로 가기 위해 왜 우리는 베스트 코리아, 올스타 코리아를 구성하지 못하는가. 개혁은 오직 높은 도덕성으로만 할 수 있는데, 저들의 행태가 과연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정의로운가. 아아, 또다시 맞는 4월의 하늘아래서 우리는 왜 이렇게 답답하고 불안한가. 암울한 의문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 민주, 정의, 인도의 대도(大道)를 걷는 떳떳하고 당당한 나라,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도덕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반듯한 나라, 인류문명을 선도하는 선진 문화도덕국가를 향해 4.19혁명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에 목이 마릅니다. 우리들의 초심을 되찾자는 간절한 뜻을 담아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되새기는 것으로 저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976년 12월 23일 저녁, 이 시를 처음으로 법정에서 낭송한 홍성우 변호사와 이 시를 쓴 우리들의 교우 김지하는 지금 몸이 편치 못합니다. 두 분의 쾌유를 빌면서 이 시를 다시 외웁니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민주 · 정의의 4. 19정신이여.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 영원하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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